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문단 편집) ===== 루마니아 전선 ===== 평소에 [[루마니아 왕국]]이 눈독을 들이고 있던 것은 바로 [[트란실바니아]]였다. 루마니아는 브루실로프 공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자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힘이 한계에 달했으니 트란실바니아를 탈취할 기회가 왔다고 보고 [[8월 27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동부전선에 참전한다. 모든 루마니아군 사단들이 트란실바니아로 진격해 들어갔다. 당시 트란실바니아에는 극소수의 제국군만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마니아는 며칠 만에 트란실바니아를 점령한 후 도브루자의 방어를 강화할 심산이었다. 루마니아군은 [[9월 6일]]까지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완전히 점령했지만, 동맹군은 신속하게 반격에 나섰다. [[베르됭 전투]] 패배의 책임을 지고 [[파울 폰 힌덴부르크|힌덴부르크]]에게 총사령관직을 넘겨준 [[에리히 폰 팔켄하인|팔켄하인]]이 제9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콘라트는 명목상 최고 지휘관이였지만, 독일의 제9군 사령부가 실질적으로 전선을 도맡았다. 그래도 콘라트가 짜놓은 전략을 독일이 따르면서 루마니아의 침공을 저지하고 역으로 루마니아를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루마니아의 식량과 목재, 그리고 가장 중요한 [[플로이에슈티|유전]]을 차지한다는 꿈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내 전선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지만, 정작 승리는 사령부나 군대의 위신을 되살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독일이 큰 수혜를 입게 되었다. 콘라트에게 설상가상으로 이 전선에서 복부하던 맏아들 쿠르트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는데, 평소에도 몸이 좋지않았던 쿠르트는 세번째로 복귀해서 아버지를 따라 참전하였는데 동일한 폐 질환으로 병이 재발하는 바람에 쿠르트를 후방으로 이송해야했다. 처음에는 [[빈(오스트리아)|빈]]에 있는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전시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안전하게 치료하기에는 쿠르트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에, 콘라트는 중립국이자 휴양지로 유명한 스위스의 아로자(Arosa)로 쿠르를 보내고 거기서 요양을 하도록 조치를 했다. 루마니아와 전쟁을 하던 기간 동안에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카를 1세|카를 대공]]에게 콘라트의 대안 후보를 제안해 달라고 요청했다. [[카를 1세|카를 대공]]은 후보 목록들을 급히 추려본 결과, 제5군사령관 [[오이겐 폰 외스터라이히테셴|오이겐 대공]], 제5군참모장 겸 제1군사령관 [[알프레트 크라우스]], 제14보병사단장 [[막시밀리안 치체리츄 폰 버차니]]및 제6군단장 [[아르투어 아르츠 폰 슈트라우센부르크]]가 언급되었다. 이들은 [[카를 1세|카를 대공]]이 전쟁중에 성과를 냈던 장성들 위주로 조사했기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모두가 콘라트만한 위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독일 제국 내부에서도 콘라트를 분명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 제국군 장군참모장인 [[에리히 폰 팔켄하인|팔켄하인]]부터가 콘라트와 동맹이였고, [[파울 폰 힌덴부르크|힌덴부르크]], [[에리히 루덴도르프|루덴도르프]]와도 콘라트는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 독일 장성들 외에도 독일 제국의 황제인 [[빌헬름 2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자 원수인 콘라트를 프로이센 보병 의례 연대장으로 임명했었다. 얼마 안가 독일 황제는 곧 콘라트에게 육군 야전원수(Generalfeldmarschall)의 지휘봉을 수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를 1세|카를 대공]]이 만약 콘라트를 내친다면 독일과의 연계에서도 분명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이손초 전투와 브루실로프 공세로 실책을 거둔 콘라트에 대해서 무수히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카를 1세|카를 대공]]은 황제에게 당장은 그를 해임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물론 그렇다고 콘라트가 계속 남아 있는 한 [[카를 1세|카를 대공]]은 콘라트의 견제를 계속 받아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결국 AOK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넓히기 위해서는 총사령관을 [[프리드리히 폰 외스터라이히테셴|프리드리히 대공]]에서 보다 의지가 더 강하고 자기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오이겐 폰 외스터라이히테셴|오이겐 대공]]으로 교체하여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